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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와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 비교

by 꾸깃쿠크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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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네의 테세우스와 로마의 로물루스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저서 영웅전에서

그는 둘의 비슷한 점을 아래와 같이 밝힙니다.

 

두 사람은 모두 부모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으면서도 신의 아들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포세이돈

테세우스는 포세이돈,

군신 마르스(그리스 신화의 아레스)

 

로물루스는

군신 마르스(그리스 신화의 아레스)의

아들로 알려져있다

 

 

두 사람은 힘이 장사였고 지혜로웠다.

 

더욱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세웠다.

 

로마의 전경

 

로물루스는 로마를 세웠고

아테네

 

테세우스는 아테네를 세웠다.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니콜라 푸생 작, (1634–1635)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둘은 모두 납치한 여성과 결혼했다.

 

 

또한 그들은 가정적으로 불행했고,

동기간의 미움을 받았으며,

시적 과장을 최소화한 이야기를 빌려

표현하자면, 말년까지도 시민과 갈등을 빚었다.

 

둘의 차이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테세우스 VS 로물루스

 

첫번째 테세우스는 자신이 선택하여

스스로 왕위에 올랐으며

트로이젠(테세우스의 고향이자 외가)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권을 장악함으로써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다.

 

그러나 로물루스는

당면한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플라톤의 표현을 빌리면

"겁에 질려 생긴 용기"로 무장했다.

징벌을 무척 두려워했던

그는 남의 의지에 따라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다.

 

둘째로, 로물루스의 중요한 행적은

알바의 독재자 한 명을 처단한 것이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스키론, 시니스, 프로크루스테스, 코리네테스 등

당시 이름을 알린 악인들을 처단했다.

 

스키론을 무찌르는 테세우스

테세우스와 시니스

테세우스와 프로크루스테스

 

테세우스는 당시 트로이젠에서

아테네로 갈 때 안전하게

바닷길로 갈 수 있었으나

육로로 감으로써

이러한 압제자들로부터

그리스인들을 해방시켜주었다.

 

 

테세우스는 자신이 압제자들에게

잘못된 처사를 겪지 않았으면서도

그들에게 대항했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폭군이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는 한,

폭군이 다른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악행은 그냥 두었다.

 

 

테세우스는 크레타 괴물의 먹이가 될 뻔했고,

안드로게오스(미노스왕의 아들)의 무덤에

바치는 제물이 될 수도 있었다.

테세우스는 매우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굴종을 겪을 수 있었음에도

크레타에 바치는 제물로 자원했다.

 

 

테세우스는 민주주의의 길을 갔고

로물루스는 참주 정치의 길을 갔다.

 

 

로물루스는 미천한 상황에서 출세했다.

그는 돼지 치는 노예의 아들이었지만,

스스로 자유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라틴족을 해방하였다.

 

그는 테세우스처럼 여러 부족을

한 곳에 모아 거주하도록 하거나

지난날의 왕과 영웅들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들을 파괴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조금 변하지만

로물루스가 처음 집권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옮기거나 확장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도시를 새로 지었고,

이는 영토와 국민과 왕국과 그에 소속한 여러 부족,

또한 결혼을 비롯한 다양한 인맥을

그 스스로의 힘으로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로물루스는 나라를 세우면서

누군가를 파멸에 빠뜨리거나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한 도시의 시민이 되기를 바랐던,

거처 없는 이들의 은인이었다.

그가 강도나 흉악범들조차

죽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전쟁으로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고

도시를 함락하고 여러 왕과 장군들에게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아이네아스

 

실제로 레무스를

누가 죽였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로물루스가 어머니를 파멸에서 구출하였고,

자랑스럽지 못한 신분으로 살아가던

할아버지를 아이네아스

(트로이의 생존자이자 로마의 시조)의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또한 그는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며,

본의 아니게 남을 해코지한 일도 없다.

그와 달리 테세우스는

흰 돛을 달기로 한 약속을 소홀히 하여

아버지를 죽게 했다.

 

헬레네를 두고 내기하는 테세우스와 페이리투스

 

여인들을 겁탈한

테세우스의 범죄 행위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첫째로, 그런 일이 너무 잦았다.

그는 아리아드네와

안티오페와 트로이젠의 아낙소를 납치했다.

더욱이 헬레네를 납치했을 때 테세우스는

결혼할 나이가 지났던 반면,

헬레네는 혼기에 이르지도 못했다.

그 무렵에 헬레네는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였고

테세우스는 설령 합법적인 결혼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늦은 나이였다.

 

둘째, 여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약탈혼은 명분이 없는 행위였다.

트로이젠이나 라코니아 사람들 또는

아마존 전사의 딸들은

테세우스와 약혼을 한 것도 아니었고

아테네의 왕 에레크테우스나

케크롭스의 딸들처럼

테세우스에게 아이를 낳아 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은 그의 행동이

욕망을 채우려는 음란 행위였다 생각한다.

 

 

로물루스는 그와 달랐다.

첫째, 비록 그는 여성 8백 명을 납치했지만

그들 모두를 아내로 삼은 것은 아니며,

들려오는 바와 같이,

그 가운데 헤르실리아

한 명만을 아내로 맞이했고,

다른 여자들은

우수한 로마 시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둘째, 로물루스는

그 여인들에게 영예와 사랑과

정당한 대우를 베풂으로써

자신의 폭력적이고 의롭지 못한 행위를

가장 명예로운 업적으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행동으로 인해

납치된 여성들로부터

로마와 사비니족의 통합이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자신이 정치적 동맹을 굳건히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을 선택했음을 분명히 입증했다.

그는 이렇게 두 부족의 핏줄을 합침으로써

조국의 다가오는 미래에 흐르는 샘물과

같은 힘을 물려 주었다.

 

또한 로물루스는 겸손하고 다정하며 안정감 있는

결혼 관계를 통해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그 뒤의 세월이 입증하는 바,

그로부터 230년이 지나는 동안

어떤 남자도 아내를 버리지 않았고,

어떤 여자도 남편을 버리지 않았다.

 

로물루스는 자신과 맞섰던 사람들보다

더 훌륭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로물루스는

다른 인종과 결혼하면서

공동으로 정권을 나눠 행사했고,

이때 두 인종 모두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아테네 사람과의 결혼을 통하여

새로운 친구나 동지를 얻기는커녕 원한만 키웠고,

전쟁을 불러왔으며, 수많은 시민을 희생시켰고,

끝내 아피드나이를 빼았겼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오두막의 아내에게 데려오는 파우스툴루스 (Nicolas Mignard, 1654)

 

로물루스는 신의 총애와 보호 속에 살았다.

그러나 아이게우스는 외국에 머물러 있는 동안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신탁을 받았고,

이는 테세우스의 출생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플루타르코스 저, 신복룡 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주)을유문화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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