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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을 추방하다-아리스티데스 이야기-

by 꾸깃쿠크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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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편 추방제 : 추방할 사람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 제출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추방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써서 추방하는

도편 추방제가 있었습니다.

 

아테네 민회가 소집되었던 프닉스 언덕(출처:위키백과)

 

민회는 해마다 투표를 해서

과반수의 찬성만 얻으면,

그 권위와 권력이

아테네에 위험하다고 간주되는 시민을

10년 동안 국외로 추방하였습니다.

당시, 민회에 참여하는 시민은

일만명 정도 되었다고하니

이것이 얼마나 큰 일이었으며

아테네가 민주주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클레이스테네스(출처:위키백과)

 

이러한 도편추방제는

클레이스테네스라는

인물의 개혁에 의해 실시되었는데

그는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실시한

참주정치(독재정치)를 끝내는데

앞장 선 인물입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독재자였지만

통치를 잘했다고 전해집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솔론 이후 이어진

아테네의 무정부 상태와 혼란을 종식시키고

아테네에 평화와 질서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유례없는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고 합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출처:위키백과)

지중해 세계의 도자기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코린트, 사모스, 밀레토스, 로도스를 제치고

적색이나 흑색을 주로한 그림이 그려진 항아리로

유명한 아티카 도자기가

지중해 고급 도자기 시장을 독점하게 된 것도

그의 통치 시기라고 합니다.

 

안도키데스 화공의 일체형 암포라. 흑회면에 그려진 헤라클레스 아테나. 기원전 520년~510년경.(출처:위키백과)

영토도 확장되어

살라미스와 델로스가

다시 아테네의 지배를 받게 된 것도

페이시스트라토스 때라고 합니다.

 
 

살라미스와 델로스의 위치(출처 : 위키백과)

아테네 사람들은 통치를 잘한

페이시스트라토스의 독재는 허용했지만

그의 아들들의 독재는 허용하지 않았고

스파르타의 도움을 얻어

참주정치(독재정치)를 끝냈다고 합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솔론 이전에 실시되었던

귀족정이 다시 실시 될 거라는

귀족들과 스파르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다시 민주정치를 실시하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두고

"보다 민주적인 방향으로 정치체제를 개혁"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출처 : 위키백과)

 

클레이스테네스는 행정적 목적으로

아테네를 데모라 불리는

소구역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데모의 구분이 생긴 후 아테네 사람들은

소속된 가문이나 씨족을 이야기하기 보다

자기 이름과 아버지 이름에다

소속된 데모의 이름을 붙였고

이는 아테네의 공적 생활의 기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로 소크라테스는

'알로페케 데모의 소프로니스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 1787년(출처:위키백과)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생겨난 정치체제를

데모스(민중)에 의한 정치체제라는 의미로

데모크라티아라고 불렀고

아테네는 민주 정치 체제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

도편 추방제는 민주정치를 확립한

클레이스테네스가 실시한 개혁 중 하나였고

아테네 민주정치를 잘 보여주는 제도였습니다.

 

도편 추방에 의해 추방된 사람은

명예가 더럽혀지지도 않았고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추방당한 당사자는

시민의 권리를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었고

재산을 몰수 당하지도 않고

단지 10년 동안 외국에서 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도편추방제가 도입된지

20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도편추방 투표장에서

아테네 정계의 유력 인물이었던

아리스티데스에게

한 사내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리스티데스(출처 : 위키백과)

 

사내는 도자기 파편을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여기에 아리스티데스라고 써주시지 않겠습니까?"

 

글씨를 쓸 줄 몰랐던 남성은

자기가 부탁한 상대가

아리스티데스인지도 모르고 부탁을 하였고

아리스티데스는 사내에게

아리스티데스라는 인물이

무슨 나쁜 짓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뇨, 나는 그 사람 얼굴도 모릅니다.

다만, 아리스티데스는 위대한 인물이라느니

정의의 사도라느니 하는 말을

하도 여기저기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다 보니

진저리가 나서요"

 

아리스티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사내가 내민 도자기 파편에 자기 이름을 써서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해 아리스티데스는

아테네에서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아리스티데스는

자신을 추방하는

투표를 자기 손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화는 아테네 민주정치를 잘 보여줍니다.

 

민주정치는 뛰어나고 유력한 인물

한 명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

즉 민중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민중에는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내도 포함된 것이었죠

 

추방 당한 사람을 모든 권리를 유지한 채

외국에서 살게 하는 것은

유력한 한 사람에 의해

아테네가 좌지우지 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였지만

유능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의 추방이

아테네 국익에 반대되는 경우가 많아서

도편 추방제

기원전 417년에 페지되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하나인 테미스토클레스도 도편 추방제에 의해 추방당한다.

위의 사진은 테미스토클레스(출처:위키백과)

 

 

우리는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내가 아리스티데스를 추방한 이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적은

아리스티데스의 모습에서

민주정치와 독재,

그리고 중우정치까지

정치 체제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 볼 수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통해

유능하고 지지받는 사람이 등장하면

민주주의 참뜻과 멀어지고

그렇다고

유능하고 세력이 큰 사람이 없어지면

국익과 멀어지게 되는 아이러니 말입니다.

 

 

 

 

페르시아 전쟁 상황도(출처:위키백과)

 

참고로

추방당한 아리스티데스는

페르시아 전쟁이 터져

추방당한지 3년이 되기 전에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평소에 클레이스테네스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던 그였지만

페르시아 전쟁 당시에는

그와 협력하여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출처

1. 위키백과

2. 시오노 나나미 저, 김석희 옮김, [로마인 이야기],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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