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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 <율리우스 카이사르>-청년기-

by 꾸깃쿠크 202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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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는 마리우스 일파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마리우스, 킨나와 관련된 이른바 민중파 인사들을 말살하기 위해 '살생부'까지 만들었습니다.

 

술라는 밀고제를 택해 '현상범'을 죽인 사람에게는

살해된 자의 재산에서 빼앗은 막대한 액수의 보상금과 현상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술라가 작성한 '살생부'에는 80명에 가까운 원로원 의원과 1천 600명의 '기사'(경제인)를 포함하여 모두 4천 700명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였고 재판도 받지 못하고 살해당하고는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물론 자손까지 로마의 공직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술라가 작성한 '살생부'에 오늘의 주인공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마리우스의 처조카이자 킨나의 사위라는 점에서 술라가 보기에는 처단해야할 민중파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술라의 측근들이 아버지도 없는 카이사르 집안의 후계자가 아직 18세에 불과하며, 정치적인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살려줄 것을 요청합니다.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술라는 로마에서 존경을 받고 있던 여사제들이 카이사르 구명운동에 가담하자 그를 살려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는 살생부에서 카이사르의 이름을 지우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자네들은 모르겠나? 그 젊은이의 마음속에는 100명이나 되는 마리우스가 들어 있다는 것을..."

 

술라는 카이사르의 목숨을 구해주는 대신 그에게 킨나의 딸과 이혼하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명령이었고 자비로 3개 군단을 편성해 술라와 함께 싸웠던 폼페이우스조차 이러한 술라의 명령에 복종한 바 있었습니다. 폼페이우스의 장인이 민중파였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술람의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결국, 카이사르는 술라를 피해 이탈리아 전역으로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고 추격을 피하고자 소아시아로 대피하게 됩니다.

 

카이사르의 이러한 행동은 카이사르는 어렸을 적부터 배짱이 대단했다고 해석하거나 민중파의 지도자를 꿈꾸는 그가 민중파를 배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임신한 아내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합니다.

 

로마인이야기의 저자는 권력자라도 개인의 사생활에 참견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같이 자란 노예 두세 명과 같이 도망다니던 카이사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입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입대를 선택하고 아시아 속주 총독인 마누키우스의 진영에 가서 막료로 입대합니다. 마누키우스는 오리엔트 원정 당시 술라의 부하였던 인물로 보스적 기질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권력자에게 거스르는 행동을 해 도망다니던 카이사르가 당당하게 본 명을 밝히고 입대를 요청하자 입대를 허락해줍니다. 원로원 의원을 지낸 인물의 아들은 참모 본부의 막료가 될 자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막료가 됩니다.

 

카이사르는 레스보스 공방전에서 군사와 관련한 첫 경험을 하는데 목숨을 걸고 아군을 구한 전사에게 내리는 '시민관'이라는 훈장을 받는 전과를 올립니다.

 

이후 그는 킬리키아 지방으로의 전출을 요청하고 킬리키아 지방에 도착하자마자 술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급하게 로마로 귀환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그의 시대를 허락하지 않았고 술라파의 중진인 루쿨루스와 크라수스, 폼페이우스가 포로 로마노를 활보하는 주인공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권력을 회복하고자하는 민중파의 권유에도 가담하지 않고 몸을 낮추며 때를 기다렸고 민중파들의 실패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23세가 된 카이사르는 변호사 개업을 합니다. 로마의 변호사는 변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고소하는 검사 역할도 했는데 유력자나 저명인사를 상대로 고발해 승소하면 명성을 얻을 수 있어서 정계진출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이었습니다.

 

카이사르 또한 명성을 얻고자 유명인사를 고발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누군인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그가 패소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는 두 번째로 술라의 측근이었던 자를 고발하나 또 패소했다고 합니다. 그의 변호사 개업은 실패로 끝나는데 민중파의 사람들이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하고 아직 술라파의 세력이 건재하던 로마에서 주목을 끌지 않기 위해 카이사르는 몸을 피신하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가 20대에 개선식을 거행하고 30세에 총사령관을 맡는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갑니다. 그는 공직 진출이 가능한 30세가 될때까지를 여유 있는 시기로 생각하고 해외 유학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유학하기 위해 대학에 가던 도중 해적을 만나고 인질로 붙잡히게 됩니다. 해적들은 카이사르에게 20탈렌트의 몸값을 매깁니다. 20탈렌트는 4천 300명의 병력을 모집할 수 있는 거액이었는데 카이사르는 자신의 몸값을 듣고 껄껄 웃으며

 

"네놈들은 누구를 붙잡았는지 모르는 모양이군"하면서 스스로 몸값을 50탈렌트로 올렸다고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몸값을 올렸다는 것에서 역사가들은 그가 자기 과시욕이 큰 담대한 인물로 기술하지만 저자는 몸값을 올림으로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던 속셈이었다고 해석합니다. 그가 죽으면 큰 금액을 손해보게 됨으로 큰 금액은 카이사르의 안전을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 높은 금액은 마련하기 어려우므로 둘 사이의 중간지점으로 50탈렌트를 정했을 거라고 해석합니다.

 

카이사르의 노예들이 몸값을 마련하는 동안 카이사르는 해적선에서 해적들의 눈치를 보며 주뼛거리는커녕 거만하게 행동했다고 합니다. 그가 자고 싶을 때 해적들이 떠들거나 하면 종자를 보내서 조용히 하라고 명령까지 하고, 해적들의 무술 훈련이나 오락에 참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해적들을 청중으로 삼아 그동안 써둔 시나 연설을 들려주기도 하고 누군가가 한눈이라도 팔면 지성이 모자라는 야만인이라고 욕을 퍼붓기도 했다고 합니다. 카이사르는 해적들에게 언젠가는 네놈들을 목졸라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자주 위협하고 했는데 해적들은 그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 들여 껄껄 웃고는 했다고 합니다.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의 몸이 된 카이사르는 밀레투스로 가서 해적 소탕을 위한 병력을 모집하고 해적 소탕에 성공합니다. 해적을 소탕하고 전리품은 나눠가졌다고 하니까 자신이 지불한 몸값은 그대로 되찾을 거라 추정됩니다. 속주 총독은 해적들의 처분을 승자에게 맡기고 카이사르는 평상시하던 농담대로 해적들을 교수형에 처합니다.

 

유학시절 카이사르는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소아시아지방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사병을 모아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공적인 지위가 없었기 때문에 한바탕 활약한 뒤에는 복귀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외삼촌인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비티니아 지방의 총독으로 부임하자 대학을 떠나 비티니아로 갑니다.

 

법학자로서,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뛰어난 코타였지만 군사적 자질을 부족했던 코타는 폰투스의 미트라다테스 왕의 군대에 밀려 비티니아에서 도망치고 도망친 곳에서 병을 얻어 죽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갈 곳 없는 몸이 되지만 코타가 죽고 나서 공석이 된 제사장 자리에 카이사르가 임명됐다는 소식을 로마로부터 듣게 됩니다.

 

로마의 제사장은 겸직이 가능했고 카이사르는 고위 장교에 해당하는 대대장에 출마해 당선되게 됩니다. 아직 30세가 안 되었기 때문에 이는 공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당선됨으로써 연중을 잡아서 막료의 말단에 끼여들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27세가 되어서야 15명 가운데 한명인 제사장이면서 통상 2개 군단으로 운영되는 20명의 대대장 중 한 명이 되면서 보직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큰 출세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출세한 게 아니라는 것은 같은 해 있었던 스파르타쿠스의 난에 80명의 대대장이 출전하였는데도 로마에 있던 그가 끼지 못했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군사적 업적을 토대로 나날이 명성을 더해가던 폼페이우스는 스파르타쿠스의 난을 토벌하는데 일조한 크라수스와 손을 잡으면서 권력을 더해 갑니다.

 

카이사르는 31세에 비로소 회계감사관에 선출되면서 무급의 봉사를 하는 로마의 고위직 '명예로운 권력'의 출발점에 서게 됩니다.

 

시오노 나나미 저, 김석의 역, 로마인이야기, 한길사

 

로마인 이야기 4: 율리우스 카이사르(상)저자시오노 나나미출판한길사발매201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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