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주사위는 던져졌다"
등등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들어 본 적 있을 이러한 대사들은
카이사르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대사들이 전문지식이 아니라
일반 상식으로까지 여겨질 정도로
유명한 인물인 카이사르의 유년기는 어땠을까요?
카이사르는 귀족이기는 했지만
로마 공화정의 유력하고 부유한 시민들이
주로 집을 짓고 살았던 팔라티노 언덕이 아니라
로마의 일곱 언덕 아래 서민들의 주거지였던
수부라에서 나고 자랐다고 합니다.
그는 37세에 최고 제사장에 뽑혀 포로 로마노 안에
있는 관저로 이사할 때까지 수부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카이사르의 율리우스 가문은
로마의 모태가 된 알바롱가의 유력자 가문으로
로마의 3대 임금인 툴루스 호스틸리우스가
알바롱가를 무너트리고
나중에 풀루타르코스가 극찬 하듯이
'패배자조차도 로마화시키는' 방식으로
알바롱가의 유력자들자들에게
승자와 동등한 시민권을 제공함으로써
로마에게 오게 됩니다.
로마가 한니발을 상대로 전투하던때
율리우스씨족에 속하는 인물이 카르타고를 무찔러
카이사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고
이 별칭이 가문 이름으로 정착된걸로 보인다고 합니다.
카이사르는 카르타고 말로 '코끼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후 카이사르 가문은 기원전 1세기에 집정관이 나오기는 하지만
유력자라고 할 수는 없을 정도의 지위를 가진 가문이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실력으로 출세한 마리우스가 배경을 얻기 위해
결혼한 상대가 카이사르의 고모뻘 되는 율리아였고
집정관을 여럿 배출한 아우렐리우스 코타 집안의 여성이
카이사르 가문에 시집오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가난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로마가 건국된지 653년, 서력 기원전 100년 7월 12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수부라에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위대한 인물의 출생에 따라다니는
하늘에서 밝아진 별이 내려왔다는 식의 에피소드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누나와 누이 동생이 있었으며
어머니의 애정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평생 동안 그를 특징 지은 것 중 하나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도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낙천적일 수 있었던 것은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님은 그의 자신감은 어머니의 사랑으로부터
나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고대 로마에서 자녀 교육은 6, 7세부터 시작되는데
공립 학교는 없었고, 일반 가정에서도 아이들은 사설 학원에 다녔다고 합니다.
부모가 지적 수준을 갖춘 경우 부모가 직접 가르치기도 했는데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는 학자 집안으로 알려진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문
출신이었고 교양있는 여자로도 이름나 있어서
카이사르의 교육을 직접 했을거라고 추측합니다.
여자에게도 초등 교육 수준을 가르치고
앞으로 공직에 진출했을 때 보좌해줄 비서로서 노예의 자녀를 교육 시킨
로마의 전통으로보아 카이사르는 누나, 여동생, 노예들과 같이
공부했을 거라 추측합니다.
어느정도 성장하면 아이에게 가정교사를 붙여주는데
가정교사는 아테네에서 배운 그리스인이 가장 인기 있었고
그 다음이 페르가몬을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서해안이나
로도스 섬에서 공부한 그리스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급료가 비쌌고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한 갈리아인
가정교사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과목은 라틴어와 그리스어 문법, 수사학
변증학, 산수, 기하, 역사, 지리였다고 합니다.
가끔 천문학, 건축, 음악을 등을 배우는 사람도 있었다고합니다.
이러한 수업은 오전에 이루어지고
오후에는 체육 수업으로 로마 곳곳에 있는
키르쿠스(원형경기장)나 스타디움(공설운동장)에
딸린 체육 시설로 가 신체 단련을 했다고 합니다.
출처 로마인 이야기
카이사르는 성장기에 여러 사건을 경험하였는데
한니발이 침공했을 때 불리한 전황에도 이탈한 적 없던
로마의 동맹국들이 일으킨 동맹시 전쟁이
그의 성장기에 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저씨 뻘 되는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집정관으로서
율리우스 시민권법을 제정해
동맹시 전쟁을 끝마칩니다.
또, 그에게 고모부뻘 되는 마리우스는
그의 성장기에 술라와 다툼을 벌이고 있었고
친인척 관계에 있는 만큼 이들의 이야기가
카이사르의 집안에 자주 올라오고
어린 카이사르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와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모두 카이사르가 9~13살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카이사르가 15살 때 카이사르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카이사르는 집안의 가장이 되었고
카이사르의 어머니는 당시 재혼을 장려하던
풍습과는 반대로 재혼을 하지 않고 카이사르는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부터 카이사르가 마리우스파와 술라파 사이의
권력투쟁에 휘말리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어머니의 지원이 카이사르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거라 추측됩니다.
마리우스의 뒤를 이은 킨나는
정치적 이유로 카이사르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는데
17세가 되기 전 결혼하는 것은 상당히 일찍 결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킨나는 율리우스법을 만들어 공화정 내에서 어느정도 지지를 받던
루키우스 율리우스와 친척이자 평민들의 영웅인 마리우스의 조카뻘 되는 카이사르를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리스에 와 있던 술라가 그만큼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거라 추측합니다.
킨나의 딸과 결혼하기 전 카이사르는
아버지가 정해준 기사 계급(상인)의 배필이 있었지만
파혼하고 킨나의 딸과 결혼합니다.
이것은 장차 정계에 진출할 때 민중파와 원로원파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여 민중파로 자신의 노선을 정하는 승부수를 던진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청년기 편에서 계속됩니다.
출처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로마인 이야기,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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