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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권력자 술라, 공화정을 위해 시대를 거스르다(로마인이야기 3권 내용 요약)

by 꾸깃쿠크 2023.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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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와는 달리,

스키피오 가문이 속해 있는 명문 귀족인 코르넬리우스 일족에 속해 있었다.

 

다만, 조상 가운데 뛰어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귀족이긴 해도 별로 두드러지지 않은 집안 출신이었다.

 

평민 귀족인 그라쿠스 가문과는 그 점에서 전혀 다르다

 

그런 탓도 있어서 술라의 집은 가난했다.

 

로마에서는 단독주택을 ‘도무스’

임대 아파트는 ‘인술라’라고 불렀는데,

술라는 귀족이면서도 인술라 살고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완벽한 모국어(라틴어)를 사용하고

그리스어에도 능통했지만,

이런 학업을 창녀들이 보태주는 돈으로 이루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호방한 성격으로,

일개 졸병한테도 농담을 던져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병사들의 요구를 피붙이처럼 정성껏 들어주어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상관에 대해서는 예의를 지키면서도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았고

할말은 거리낌 없이 했다.

 

술라는 32세때 마리우스의 휘하에서 회계감사관으로 복무했다.

회계감사관은 보통 총무나 경리 업무를 하는데

술라는 직접 기병대를 이끌고 전선에 참가하고 훌륭한 전과를 거둔다.

 

외교에 자신이 없는 마리우스를 대신해

적국의 왕과 교섭하는 역할을 맡는다.

 

술라의 외교적 활약으로 적국의 왕 보쿠스는 동맹국의 왕 유구르타를

사로잡아 술라에게 넘김으로써 전쟁은 끝이나게 된다.

 

이 유구르타와의 전쟁이 술라의 화려한 데뷔무대였다.

 

이후 술라는 아탈리아내 로마의 동맹국들이 로마 시민권을

요구하며 일으킨 동맹시 전쟁에서 활약하게 된다.

 

동맹시 전쟁이 로마 시민권의 조건을 완화시키며 끝나고

술라는 이듬해인 기원전 88년 집정관에 당선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소원대로 오리엔트 전선을 담당하는 임무를 맡게된다.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오리엔트의 왕 중 한명인

미트라다테스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였고

술라는 미트라다테스와 싸우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하지만 술라가 오리엔트 정벌의 지휘권을 얻은 것이

마음에 안들었던 마리우스가 훼방을 놓는다.

 

오리엔트 정벌을 마리우스가 바꾸는 결의가 통과되고

반대파와의 난투극이 벌어진다.

 

술라는 간신히 살아남아 로마에서 피신한다.

 

술라는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 졌음을

과거 동맹시 전쟁을 같이 치른 병사들에게 밝힌다음

로마로 진격한다.

 

마리우스는 집정관이 군대를 이끌고 수도로 쳐들어 올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술라에게 제압되어 에트루리아 지방으로 달아나게 된다.

 

술라는 민회나 평민집회에서 의결된 사항도

원로원의 승인을 얻지 모하면 실시 되지 않는다는 법안을 제출했고

술라를 두려워한 시민들은 반대를 하지 못하고 이르 가결시킨다.

 

술라는 마리우스 일파를 반역자로 선언하고 숙청을 시작한다.

 

이후 술라는 미트라다테스를 정벌하기 위해 오리엔트로 향한다.

 

술라는 자신의 다음 집정관인 킨나를 불러

술라가 성립시킨 법을 지키겠다고 최고신 유피테르에게 맹세하도록 하나

킨나는 술라가 로마를 떠나자 바로 태도를 바꿔 마리우스를 불러들인다.

 

이때 마리우스에 의한 피의 복수극이 시작된다.

 

킨나는 해외 원정에 나가 있는 술라를 총사령관직에서 해임하고

술라의 재산을 몰수한 후 국외추방을 명령한다.

 

술라가 국외 추방을 받자 술라와 같이 원정을 나간 술라 휘하의 병사들도

더 이상 정규군이 아니게 되었다.

 

킨나는 미트라다테스 정벌을 위해 술라외에 집정관 플라쿠스가 이끄는 정규군을 파견한다.

 

본국의 지원을 못 받게 된 술라는 그리스를 약탈한다.

 

미트라다테스왕의 폰투스군과 싸우게 된

술라는 연전연승을 거두던 중 킨나가 파견한 플라쿠스가

부장 핌브리아와 의견대립으로 살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술라는 적이 둘이 되어버렸고

핌브리아가 미트라다테스와 동맹을 체결하는 것을 우려해

미트라다테스와 강화를 맺는다.

 

술라는 핌브리아의 군대 옆에 진영을 구축하고

같은 동포인 핌브리아의 군대 병사들에게 여러 방법으로 회유한다.

핌브리아의 병사들은 같은 동포를 의심하지 않고 따라갔고

핌브리아가 눈치 챘을 때 핌브리아 진영은 비어버린다.

 

킨나가 술라를 꺽기 위해 파견한 부대가 그대로 술라의 부대에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술라는 바로 로마로 돌아가지 않고 소아시아 지방의 통치 체제를 재구축한 다음

그리스 아테네로 들어가 1년을 보낸다.

 

술라는 로마에 서한을 통해 경고하고

술라 휘하의 장수들은 군비가 부족할 경우

자신의 저금을 써달라고까지 하며 강한 충성을 보인다.

 

술라는 충성 서약을 받았지만 자신은 행운아(펠릭스)이기 때문에

군자금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 될거라며 자금은 공출하지 않는다.

 

킨나는 술라와 싸우기 위해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인 지원병을 가지고

항구도시 안코나에 집결하였고 그곳에서 폭동 직전의 지원병들을 통솔하지 못한 채 시시한 사고로 죽게 된다.

 

술라는 이탈리아에 상륙하여 2년에 걸쳐 로마로 진격하고

마리우스의 복수를 피해 달아났던 인물들이 속속 합류하며

술라의 군대는 수가 늘어간다.

그리고 동시에 로마 정규군의 숫자도 늘어나 술라의 군대와 로마 정규군의 치열한 전투가 치러진다.

 

이 전투는 술라의 승리로 끝나고 술라는 피의 숙청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카이사르는 이때 이혼하라는 술라의 명령에 따르지 않아 국외로 도망치게 된다.

술라는 자신의 뜻대로 개혁을 실시하기 위해

전례없는 특례를 인정받아 임기가 없는 독재관으로 취임하고

기존에 시행되었던 많은 개혁들을 폐지하거나 되돌린다.

 

술라는 호민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원로원의 의석 수를 늘리는 등 원로원의 권한을 강화시킨다. 술라는 호민관이 재선되려면 10년의 간격을 두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고 호민관 경력자는 다른 관직에 선출될 수 없다고 규정한 법안을 성립시킨다. 이로서 그는 출세를 위해 호민관에 관심을 갖던 사람들의 관심을 호민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그라쿠스 형제들처럼 호민관으로서 개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술라가 만들어낸 체제는 술라 사후 몇 년이 안되어 흔히 술라파라고 알려져 있던 폼페이우스에 의해 많은 부분 사라지게 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술라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자신의 별장에서 은둔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술라는 죽기전 집필하던 회고록에서 자기가 행운아(펠릭스)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거듭말한다. 그는 펠릭스를 성 뒤에 붙이는 존칭으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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