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읽으면서
김영하 작가님이 참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작가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무협도 쓰셨다던대 문학에 대한 내 편견을 깨뜨려 주시는 것 같다.
피뢰침은 어렸을 때 번개를 맞은 여자의 이야기이다.
번개를 맞은 경험을 잊지 못하던 여자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번개를 맞은 경험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다시 번개를 맞고 싶어하는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자는 그들에게 끌린다.
그들이 한 경험의 중독성을 여자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흥종교 단체나 인터넷의 가벼운 모임이라고 생각했던 모임은 사이비 종교가 아니었으며 진지했다.
세인트 엘모의 불 등을 연구하기도 하고 학술적 교류도 이어나가면서 그들은 진지하게 낙뢰에 대해 연구했고 다시 번개를 맞고 싶어했다.
이 글에서 놀란 점은 낙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었다.
전문적 지식과 함께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낙뢰라는 평범하지 않은 주제를 이렇게 깊고 심도 있게 다루면서 독자들을 그들의 세계로 집중하게 하는 흡입력이 있었다.
소설 속 j가 모임의 사람들이 낙뢰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오줌을 싸는 등의 배설을 통해 몸 안 전류가 밖으로 빠져 나갔기 때문이라는 점을 짚으며 서술자가 자신의 배설을 숨겼을 거라고 짐작하는 장면 또한 그랬다. 소설 속에서 낙뢰에 경험에 대한 여자의 심리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 안에 오줌에 관한 부분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에서 배설과 낙뢰의 공통점은 해방감 혹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작가들은 어떻게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마치 본인처럼 서술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한편, 이 이야기는 단순히 낙뢰를 맞고 싶어하는 내용이라기보다 공포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죽음은 무서워서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생존의 희열이 그 어느때보다도 진하게 남는 것도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이다. 그런 점에서 공포는 자극적이고 중독성을 갖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러한 공포가 주는 매력에 빠져 있다. 다시 낙뢰를 맞는 거에 두려워하던 서술자가 낙뢰를 맞고서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낙뢰를 맞은 J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은 J를 좋아해서 했다기보다 이성적으로 하던 거부감에서 벗어나 공포의 매력을 받아들이면서 한 행동이 아닐까 싶다.
소설 피뢰침은 비정상적인 것을 받아들일때의 사람의 감정을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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