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다. 남자는 가끔 성욕을 다른 곳에서 해소하는 정도. 보험에도 들지 않았다. 강도로 위장하지도 않았고 원한 살 일도 없다. 그 조그만 사진관 운영해서 사채놀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남의 돈 크게 빌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사진관 살인사건 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에 수록된 첫 작품 사진관 살인사건을 읽었다.
사진관 주인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범인을 찾는 형사의 이야기이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수사물, 스릴러 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 소설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형사의 추리와는 별개로 범인은 어이없이 붙잡힌다.
범인을 추척해 가는 스릴보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나는 비밀들과 인간관계에 이 이야기는 집중한다.
이야기는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그리기보다 현실적이고 염세적인 사랑을 다룬다.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최초 목격자인 사진관 주인의 아내였다.
형사는 아내의 곱상한 외모에 치정을 의심한다.
그리고 아내는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당할까봐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낸다.
남편과의 관계는 어땠고 용의선상에 오른 다른 인물과는 어떤 관계였는지...
아내는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아내는 자신이 인화한 손님의 필름 중에 자신의 이름 경희를 적어 고백한 사진도 있었다고 한다.
형사는 아내가 말한 손님을 취조한다.
손님은 전문대학의 시간강사이다. 그는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고 필름을 인화하기 위해 사진관에 자주 들렀다.
그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은 그냥 단골이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경희 사랑해"라고 쓰여진 칠판 사진은
아들이 같은 반 친구에게 고백하기 위해 찍어달라고 부탁해 찍어준 사진이라고 한다.
자신은 사진관 주인 아내의 이름을 모른다고 한다.
형사로부터 남자의 이야기를 전달 받은 여자는 실망한다.
... 그냥 그런 거에요. 형사님. 생각해보세요. 형사님이 어떤 여자에게서 꽃을 받았어요. 그럼 형사님은 그 여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여자가 와서는, 꽃이 잘못배달됐다고 하는 거에요. 아니면 돈이 남아돌아서, 심심해서, 그도 아니면 꽃집을 하는데 꽃이 남아서, 두면 상해버릴 것 같아 보냈노라고 한다면, 그냥 그런 거에요. 그게 진실인 거에요. 꽃 받은 형사님만 바보 되는 거죠. 안 그래요?
사진관 살인사건 중
범인이 다른 곳에서 붙잡히고
사진과 주인 아내와 단골 손님 사이의 로맨스는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일탈을 꿈 꾼 여자의 착각으로
마무되는 듯했다.
하지만 형사는 알 수 없는 직감으로 사진관에 간다.
사진관에서 남자와 여자는 만나고 있다.
형사는 지난번 굳이 하지 않았던 확인을 한다.
남자의 아들 담임 선생님은 자신의 반에 경희라는 아이는 없다고 답변한다.
형사는 집으로 돌아와 과거 바람을 피웠던 아내가 깍아 주는 과일을 먹는다.
바람 핀 남자가 오줌을 지렸던 이불을 빨았던 아내의 발을 붙잡는다.
잠든 형사는 꿈 속에서 아내에게 과일처럼 껍질이 벗겨지면서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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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형사는 아내의 불륜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자신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내에 대한 불편함이 어떻게든 해소 되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왜 바람을 폈던 것일까? 사진관 살인사건은 형사에게 아내와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아내가 왜 바람을 폈는지 궁금했고 별다른 문제가 없었음에도 바람을 핀 사진관 여자의 이야기가 그의 궁금증에 한 가지 가설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꼭 어떤 문제가 있어야만 바람을 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문제가 없기 때문에 바람을 필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진관 부부가 한 염세적인 사랑은 형사가 경험하고 있는 사랑이었고 형사는 누구 탓을 할 수 없던 답답함이 조금 해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껍질이 벗겨지면서 행복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사람이 죽은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고 실망하는 연인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둘 다 불륜이라는 잘못된 사랑이다.
이야기는 현실에 엄연히 존재할 수 있는 염세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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