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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풀크라운/브라우니 라이브러리

커피하우스

by 꾸깃쿠크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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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이후 중동에는 커피하우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라고 알려진 곳은 오스만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1475년 개점한 키바 한이다.

 

당시 오스만제국에서 커피가 얼마나 중요했냐면, 부인은 남편이 매일 일정량의 커피를 제공하지 못하면 이혼할 권리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커피 문화가 유럽에 전래된 것은 17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커피는 주로 아랍과 이슬람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마셨던 탓에, 기독교 문화가 지배적인 유럽인들은 커피를 '이교도나 마시는 음료'라고 생각했다. 커피는 실제로 '이슬람교도의 와인'이라고 불렸다. 이탈리아 무역상들이 커피를 유럽으로 들여왔지만 문화적 거부감이 너무 커서 유럽 전역에 전파되기는 어려웠다.

 

이 편견을 깨트린 것은 교황 클레멘스 8세다. 클레멘스 8세의 측근들이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고 선포해달라"고 청원했지만 커피를 마셔본 교황은 "악마의 음료라기에는 너무 맛있으니 커피에게 세례를 주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1600년경의 일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시기를 즈음해서 커피가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1629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유럽 최초로 커피하우스가 탄생했다. 영국 런던에는 1650년, 프랑스 파리에는 1672년 첫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 정치인'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 죽치고 앉아서 비현실적인 정치적 견해를 퍼뜨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커피하우스는 근현대 유럽의 경제와 정치, 학문이 탄생한 곳이다. 영국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광이라고 하는 왕립학회도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다. 왕립학회 초기 회원이었던 아이작 뉴턴과 로버트 보일, 로버트 훅 등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토론한 내용은 근대과학의 토대가 되었다.

 

런던에 문을 연 로이드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에는 상인들과 선원들, 해운업계 사람들이 모였다. 영국 대형 보험사 로이드의 효시가 바로 이곳이다. 세계적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도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상류사회 신사들이 즐기는 고급 회원제 클럽 문화가 생겨나면서 영국의 카페 문화는 쇠퇴해 갔다.

 

커피하우스는 혁명을 잉태한 공간이기도 하다. 파리의 커피하우스는 볼테르와 장 자크 루소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미국 독립혁명의 근거지 역시 커피하우스다. 미국에서는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차 대신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면서 커피 문화가 발전했다.

 

지금은 여성들이 카페 문화를 더 많이 즐기지만 과거 커피하우스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성들은 커피하우스에 출입할 수조차 없었다. 영국에서는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커피하우스 문화에 반발하는 청원을 내기도 했다. 남편들이 커피하우스에서 마시는 커피와 토론에 빠져서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674년 발표한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청원>에서 여성들은 "커피는 남자들을 빈둥거리게 만들고 돈을 허투루 쓰게 할 뿐 아니라 정력까지 감퇴시킨다."라고 주장했다. 남성들은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청원에 대한 남성들의 대답>이라는 글을 발표해 "해롭지도 않고 정신을 맑게 하는 음료에 왜 화풀이를 하느냐"고 반박했다.

 

구정은, 장은교, 남지원 저, <카페에서 읽는 세계사>, 인물과 사상사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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