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버티풀크라운/브라우니 라이브러리

Bread (빵)

by 꾸깃쿠크 2022. 11. 3.
728x90

중세 유럽에서 빵은 주식이었지만 누구나 집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빵 제조권을 영주가 독점했기 때문이다. 영주는 자신이 소유한 수차와 압착기의 사용료를 징수했다.

중세의 모든 마을에는 주민 전체가 소비할 빵을 굽는 영주 소유의 화덕이 있었다. 제빵사는 밀 구매부터 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까지 도맡았다. 빵을 굽고 파는 가게에서는 기본적으로 세 명의 일꾼이 필요했다. 화덕에 불을 지피고 빵 반죽을 화덕에 넣는 가마지기, 반죽을 준비하고 구워진 빵을 꺼내는 인부, 그리고 장작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파리 시민들이 자기 집에서 빵을 굽기 시작한 것은 필리프 4세가 통피하던 1305년부터였고, 남는 빵은 남에게 팔 수 있었다

중세 유럽의 모든 왕국에서는 빵의 제조와 유통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그만큼 빵은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였다. 제빵사는 국가가 관리-감독하는 직업이었고, 신선하지 않은 빵이나 검게 탄 빵, 너무 작은 빵, 쥐가 갉아먹은 빵을 판매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빵의 규격과 가격도 국가가 통일했다. 1366년 프랑스의 샤를 5세는 2드니에와 4드니에짜리 두 종류의 빵만 판매하도록 했다.(1드니에는 1/240파운드)

중세에 빵은 계층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시금석이었다. 부자들은 밀로 만든 빵을 먹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호밀로 만든 검은 빵에 만족해야 했다. 검은 빵은 때때로 곰팡이가 피었으며, 단독이라고 불리는 궤양성 질병을 유발했다. 이 병은 호밀의 맥각이 그 원인이었다.

빵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중세인은 둥글고 넓적한 빵을 만들어 접시 대용으로 사용했는데, 음식을 빵 위에 얹어 먹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빵 위에 음식을 담으면 소스가 빵에 스며들어 맛이 좋았다. 남은 빵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이런 빵의 위상을 대변하듯 라틴어에는 '모든 식사는 빵과 함께 먹는다'라는 뜻의 companicum콤파니움이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동료'라는 뜻의 프랑스어 compagnon콩파뇽과 '단짝 친구'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copain 코팽이 나왔다.

중략

우리말의 '빵'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 포르투칼어의 pao가 우리말의 빵과 가장 발음이 비슷하다. 빵은 보래 포르투갈어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차용어다.

출처 : 김동섭 저, "100단어로 읽는 중세이야기", 책과함께 중 발췌

728x90

'버티풀크라운 > 브라우니 라이브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피하우스  (0) 2022.11.03
중세인의 이름  (0) 2022.11.03
중세 여행 - 어원-  (2) 2022.11.03
커피의 유래  (0) 2022.04.30
청소년 지원 기관  (0) 2021.03.25

댓글